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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여행

동경_140705-3

나리따 신쇼지 뒤편에 있는 공원.. 일본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다3개의 연못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일본식 정원으로 수백 그루의 매화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가 연못 주변에 정교하게 심어져 있어 계절별 자연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한국식 정원의 특징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조화의 아름다움, 일본식 정원의 특징은 정교하게 계산된 인공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들었는데, 이 산책로는 자연과 인공의 딱 중간지점에 있는 것 같다. 아주 섬세한 손길로 수없이 매만져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의뭉을 떤다고나 할까.



절 밖에는 혼이 빠질 만큼 떠들썩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불과 백여 미터 떨어진 뒤뜰은 무려 이 지경이다. 이런 반전이 마음에 든다. 뒤늦게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안쓰러울 정도로 종종거렸던 내 모습.. 그 내면에는 이런 고요함이 있길 바랬는데,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그동안 내 페이스를 잃고 휘청거렸다. 조바심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던 거다.         



나는 낡았다. 나는 허름하고 주름지고 칙칙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다. 나는 빨리 뛰지 못하고 당신들이 요구하는 짐을 가뿐하게 들어올릴 자신도 없다. 하지만 내 안에는 웬만한 우주 서너 개쯤 넉넉하게 담을 수 있는 신축성 있는 내면 세계가 있다... 다만 오랫동안 열지 않아서 입구가 어디인지 못찾고 있을 뿐이다.



비현실적인 풍경 때문일까? 아니면 방사능 탓일까? 오래 전에 폐쇄된 줄 알았던 문이 빼꼼히 열렸다. 당장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한 시간 후 나리타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에 입구에 서서 잠시 들여다 보고 조용히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입구를 찾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그러니까 이번 출장은... 아니 여행은 매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덕분에 어깨 위에 묵직하게 쌓였던 긴장도 풀고, 여유가 없어서 돌아보지 못했던 세상도 찬찬히 둘러보면서 심기일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제 조금씩 나를 되찾고 있다. 예전처럼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반들반들 윤이 나는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돌보고 가꿀 여유가 생겼으니 이제 다시 새로운 꿈을 꿀 때가 된 거겠지. 어찌됐건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