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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여행

통영-1

떠돌다 지쳤을 때 뚝 떨어져 오래 머물고 싶은 곳.. 통영


딱히 바쁜 일도 없었는데 여름 휴가 시즌을 놓쳤다. 뒤늦게 좀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지난 달이었는데, 또 한참 밍기적거리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통영 여행을 계획했다. 통영은 처음인데, 그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들었던 다양한 정보들이 버무려져 머릿속에 나름 근사한 가상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과 하얀 칠을 한 목재 주택, 세상의 끝인 듯 검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날카로운 눈매의 새 한 마리가 바다쪽을 일별하고 있는 풍경..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시간 운전 끝에 도착한 통영의 첫인상은 둥글둥글하다.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이지 않고, 흔하지 않지만 낯설지 않다. 실루엣은 완만하고 선명하지 않아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드러내놓지 않는다. 도착해서 30분만에 첫 행선지인 이순신공원에서부터 통영이 마음에 들었다.



경상남도 통영시 멘데해안길 205(정량동)에 위치한 이순신 공원은 관람료 무료.. 심지어 주차요금조차 받지 않는다. 이 공원에 계신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데,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보다 수척해 보이고 카리스마도 좀 떨어지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있어서 그런지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은 볼 때마다 죄송스럽다. 430년 전 외롭게 조선을 지키느라 고생하신 분을 왜 그 곤란한 곳에 세워 놓았을까. 이기적이고 의존적인 후손들..    



이 공원에는 산책로 말고는 별다른 게 없다. 근데 사실 산책로만으로도 충분하다. 섬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만 위치를 바꿔도 바다가 모습을 바꾼다. 높은 위치에서 보는 바다가 다르고 가까이에서 보는 바다가 또 다르다. 햇살 좋은 날 아무 의자에나 벌렁 드러누워 하루 종일 실눈 뜨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겠다. 이 날도 제일 전망 좋은 의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저씨 하나가 우리가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내내 자세도 안 바꾸고 벌러덩 드러누워 있었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자꾸 눈이 갔다.    



동해에서는 속 깊고 선 굵은 남성의 매력이 느껴지고 서해에서는 섬세하고 다채로운 여성의 매력이 느껴진다. 남해는 얼핏 보기엔 복잡하지만 하나하나 따져 보면 무엇 하나 허투루 놓여 있지 않아 단정하고, 고여 있는 것처럼 잔잔하지만 그 밑으로는 만만치 않은 흐름이 느껴진다. 굳이 표현하자면 여성성 강한 남성? 아니 남성성 강한 여성에 가깝다. 사실 이 바다의 가장 큰 특징은 감수성이다. 그래서 시인이나 소설가를 많이 품었다고 한다. 



하트 모양.. 역시 감수성 풍부한 바다가 맞는 것 같다.




날씨가 좀 더 좋았으면 감동이 훨씬 컸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자꾸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긴 하루 이틀 일정으로 여행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다. 성급한 얘기라 조심스럽지만, 은퇴 후에 이 근처로 내려올 궁리도 하고 있다.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이 바다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려나.     



물빛이 좋다. 명색이 바다인데, 강이나 호수 느낌이 든다. 섬으로 앞이 막혀 있기 때문일까?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일 텐데 의외로 깨끗해서 놀랬다. 문득 발을 담그고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초록색 바위로 변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드는 마법의 영약을 제조한다. 햇살 풀은 바닷물.. 햇살 풀은 바닷물.. 햇살 풀은 바닷물.. 햇살 떠다니는 물만 보면 20년 전 이십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머물고 싶은데 어르신들은 벌써 주차장에 내려가 계신다. 



점심 먹기 위해 들른 해원횟집 근방.. 해원횟집은 이번 여행의 먹거리 중 가장 힘을 많이 준 부분인데, 안타깝게도 기대에는 못 미쳤다. 기대가 엄청 컸다는 얘기지 맛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특히 젓가락을 번쩍번쩍 드는 힘 좋은 산낙지와 한 시간 넘게 줄기차게 꿈틀거린 개불은 좀 인상적이었다.  홈페이지는 여기.. 



점심 먹고 100미터 정도만 살짝 들어갔다 나온 해저터널.. 1932년에 완공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 예전에는 연간 사람 9만 명, 우마차 1000대, 자전거 100대, 자동차 1000대, 가마 1000거가 지나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그냥 방치된 느낌.. 



그리고 모두가 추천한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만 원만 내면 편하게 미륵산에 올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날씨가 안 좋아 후련한 전망을 볼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통영을 나폴리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의 손이 닿은 부분은 나폴리가 더 아름다울 수 있어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통영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물론 난 아직 나폴리를 실제로 보진 못했다. 따라서 이 승부는 급히 구글링한 결과임을 밝혀 둔다.)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는 아직 훨씬 더 좋아질 여지가 남아 있으니까. 사람들만 경계하면 된다. 그리고 조바심만 조심하면 된다.  



케이블카 홈페이지는 여기..



우주 최강의 일몰을 자처하는 달아공원.. 근데 나무들이 자라 우주 최강을 가리고 있다. 괜찮은 일몰 풍경을 살리기 위해 가지치기를 해야하는 걸까? 



딱히 가지치기를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길 가다 옆을 돌아보면 이런 풍경들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또 옆을 돌아보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이 동네는 구석구석이 나를 홀린다. 



충무김밥으로 유명한 한일김밥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와 일박.. 바다쪽으로 뻥 뚫린 창이 매력적인 복층형 구조의 마리조아 펜션.. 모든 호실이 별채로 구성되어 조용하고 깔끔한데, 외풍이 심해서 밤새 떨었다. 가족 단위보다는 연인에게 적합하다. 요즘 괜찮다는 대부분의 펜션이 그렇듯이.. 마리조아 펜션의 홈페이지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