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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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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삼릉의 가을.. 파주삼릉을 처음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숨이 쉬어졌다. 몇 개월만에 처음으로 허파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나무와 꽃, 하늘.. 모든 것이 내가 살아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무덤에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세상에 복귀한 기분.. 중증 질환을 앓고 난 후 소소한 풍경에서 진한 감동을 느끼는 신비한 능력을 보유하게 된 걸까. 어찌됐건 그 후 파주삼릉은 내 인생스팟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는 아이유의 , 아서 프랭크의 등이 있다.
나무들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1. 속초 가는 길에 화상 입은 나무들이 유령처럼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 끔찍했던 작년 산불의 흔적.. 처음 접하는 처참한 모습에 차에서 내려 한동안 말도 못하고 망연자실 서 있었다. 불탄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던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집앞 공터에 서있던 메타세콰이어 십여 그루가 베어진 걸 발견했을 때도 잉잉 울면서 집에 들어왔던 아내다. 비교적 둔한 감성의 소유자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여린 마음에는 더 감당하기 힘든 풍경이었으리라. 2. 산불이 나면 숲은 20년 이상 경과해야 불 나기 전의 70~80%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나무의 경우 산불 이전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동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토양 미생물이 활동을 재..
카페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 또 웅성거리는 카페에 나와 앉아 있다. 굳이 헤드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애써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무시해가면서 잘 읽히지 않는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렇다. 읽는 게 아니라 들여다 보는 게 맞다. 페이지는 넘어가지만 머리에 입력되는 건 없으니까. 예가체프는 어느 카페에 가든 실패할 확률이 적다. 강한 산미에 웬만한 디테일은 뭉뚱그려지기 때문이다. 카페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 집에 있을 때보다 1.5배 정도. 천정의 높이, 벽의 재질, 테이블 배치, 의자 등받이의 각도, 조명, 음악 등에 따라 최대 3.2배까지 느려지기도 한다. 장수의 비결은 죽는 나이를 늦추는 게 아니다. 백살까지 살았더라도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정신 못차리는 사이에 삶이 끝난다면 장수했다고 보기 어렵다. 중요한 건 시간이 천천..
파주삼릉 재실의 아그배나무.. 파주삼릉에 가면 입구 초입에 재실이 있다. 재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한다. 무심코 문에 들어섰다가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간에 펼쳐진 다른 차원의 풍경.. 아그배나무였다. 지독한 사랑에 빠진 남자가 어쩔 줄 모르고 끙끙 앓다가 마침내 머리가 폭발하는 순간 차가운 공기와 만나 그대로 굳어버린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무 한 그루가 이렇게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아그배나무는 한국과 일본에 분포하는 장미과 사과나무속 나무이다. 배나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열매가 작은 배모양으로 생겼다는 이유로 아그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4월말에서 5월 중순까지 꽃이 핀다니, 잊지 않고 이 모습을 챙겨 보려면 캘..
퇴근길.. 출근길은 마음이 급해서 네비가 지시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가는 편인데, 퇴근길은 항상 정해진 코스로 달린다. 양화대교북단에서 강변북로로 들어서 자유로를 타고 달리다가 판교, 의정부 방면으로 우회전해서 일산으로 들어서는 코스.. 네비가 길이 꽉 막혀 있으니 다른 길로 가는 게 좋겠다고 집요하게 졸라도 결코 듣지 않는다. 중증 길치인지라 겨우겨우 익힌 단순한 코스가 마음 편해서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열 번에 한 번쯤 뭉클한 노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날도 환상적인 노을까지는 아니었지만 하늘빛이 꽤 좋았다. 차가 더 꽉 막혀 오래 이 길에 머물렀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근성지.. 산책.. 양평 물가를 산책하다 보면 괜히 무서워진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데 앞에서 뒤에서 뭔가가 계속 서성이는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빨라진다. 햇살 반짝이는 날도 그런데 흐린 날에는 거의 뛰어야 한다. 차라리 뭔가가 불쑥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새들이 후다닥 날아오르거나 바람결에 나무가 움찔거려 오금이 조여든다. 강과 하늘과 새.. 강은 땅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시간을 품고 흘러 바다로 나가 차곡차곡 쌓인다. 하늘은 모든 과정을 멀찌감치 떨어져 살피는데 가끔 내킬 때만 아래로 내려와 못난 얼굴을 비빈다. 그 사이에서 새들만 분주하다. 나무.. 나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시간의 눈치를 보고 강의 눈치를 보고 하늘의 눈치를 본다. 나는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을 자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있..
홍콩 _ 마지막 날 eslite.. 아침 일찍 바리바리 짐 싸들고 나와서 찾은 에슬릿.. 홍콩에서 제일 큰 서점이라는데, 규모보다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정갈한 디스플레이, 책이 돋보이는 조명, 여유로운 동선.. 어딜가나 북적거리는 홍콩인데, 여긴 한적하다. 도서전 영향인가? 서점은 부러운데, 정작 책은 별로 볼 게 없다. 종수나 품질 면에서 우리나라가 한참 앞서 있다는.. 그러고 보면 홍콩은 뛰어난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그냥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어디서나 껍데기는 보이는데, 알맹이는 찾을 수 없다는.. 그런데 말이지. 내 좁은 시야로 파악이 안 되는 거대한 뭔가가 도사리고 있는데.. 삼박사일 동안 발톱만 더듬거리고 깝죽대는 건지도 모르겠다. IT 코너는 달랑 두 칸.. 참고할 만한 프로그래밍 책을 찾아 보려고 아침..
홍콩 _ 셋째 날 지하철(MTR).. 숨막히게 더워서 웬만한 거리는 지하철 타고 이동.. 이젠 홍콩 지하철에 적응이 끝나 옥토퍼스 카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리고 홍콩의 거리는 의외로 깨끗하다. 서울과 도쿄의 중간 정도.. 딱 좋다. 오늘은 계획 없이 떠돌아 다닐 예정.. 관광지가 아닌 홍콩의 민낯을 보겠어.. 라고 야심차게 출발했는데, 10미터만 걸어도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덥다. 지나가다 서점이 눈에 들어와 반가운 마음에 무조건 입성. 실내와 실외의 기온차는 천국과 지옥 같다. 직업은 어쩔 수 없어 컴퓨터 관련 서적부터 점검.. 딱 두 칸.. 프로그래밍 서적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종류별로 딱 한 권씩만 갖춰 놓았다. 서점에서 나와 바로 스타벅스로 직행.. 우리나라에 없는 메뉴가 있어 호기롭게 시켰는데 홍차 ..
홍콩 _ 둘째 날B 피크 트램.. 홍콩 최고의 야경을 보려면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야 한다. 빅토리아 피크에 오르는 가장 일반적이고 오랜 방법인 피크 트램.. $83(HKD)면 왕복에 스카이 테라스 포함이다. 도착했을 때 줄 서 있는 거 보고 갑자기 올라가기 싫어졌는데, 일행과 만나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대열에 합류,, 이 더운 날,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빼곡하게 모여 있으니 숨 쉬기조차 힘겹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앞쪽에서 들리는 걸쭉한 한국어.. "에혀.. 남산처럼 케이블카를 만들지 왜 기차를 만들었댜?" ㅎㅎㅎㅎㅎ 그러게 말이에요. 할머니.. 40분 만에 힘겹게 올라탄 피크 트램.. 자리를 잘못 잡아 앉지도 못했다. 경사가 꽤 가파르기 때문에 입석은 극기 훈련 수준이다. 빅토리아 피크 스카이 테라스에서..
홍콩 _ 둘째 날A 홍콩대학교.. THE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대학 순위 2016년판에 따르면 홍콩대학교는 44위에 랭크되어 있다. 26위인 싱가폴 국립대학, 42위인 북경대학, 43위인 동경대학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네 번째이다. 참고로 서울대학교는 85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100위권 안에 들어 있고, 포항공대와 카이스트, 성균관대학교가 200위권 안에 들어 있다. 물론 대학을 평가해서 일렬로 줄 세우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기준이 얼마나 공정한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교육이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고, 특히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질은 그 나라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도 좌우한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학의 방향을 잡는 일은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
홍콩 _ 첫째 날 7월 20일 7시 50분 출발.. 맙소사. 일어나 보니 6시 20분이다. 대충 얼굴에 물만 적시고 가방에 옷 몇 개 쓸어 담아 집을 나섰다. 허겁지겁 공항에 도착하니 7시 20분.. 근데 들어가는 곳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착하게 기다렸다가는 비행기를 놓칠 게 뻔하다. 제일 착하게 생긴 보안요원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스탭들이 드나드는 쪽문으로 들여보내 줬다. 검색대에서도 출국 심사장에서도 땀 뻘뻘 흘리며 하소연해서 결국 7시 40분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환전도 못하고, 홍콩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렇게 해외여행을 떠났다. 공항에서 핸드폰에 심카드($118HKD)를 장착하고.. 시내까지 데려다 주는 직행 열차인 SEL 탑승($100HKD).. 화려한 트램을 보니 비로소 홍콩에 왔다는 게 실감이..
통영-2 지금까지는 갖고 싶은 거 딱 하나만 얘기해 보라고 하면, 한참 고민했는데.. 이제 망설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는 장사도가 갖고 싶다.. 장사도 가는 뱃길.. 여기가 바로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다! 배가 뜨니 어김없이 따라붙는 갈매기.. 요즘 갈매기들의 꿈은 새우깡이다. 하긴.. 높이 날 궁리를 하기엔 유혹이 너무 크겠다. 어찌 갈매기들만 탓할 수 있으랴.. 그러니까.. 날개가 있다고 모두 자유로워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40여 분만에 도착한 장사도.. 잠시 입 다물고 산책.. 통영→한려수도일원→장사도 왕복 요금 성인 21,000원, 장사도 입장료 8,500원, 합계 29,500원.. 통영유람선협회의 홈페이지는 여기... 서울 올라오기 전에 에서 점심 먹고, 장시간 운전에 대비해 찐한 커피 복용하러 들른 ..
통영-1 떠돌다 지쳤을 때 뚝 떨어져 오래 머물고 싶은 곳.. 통영 딱히 바쁜 일도 없었는데 여름 휴가 시즌을 놓쳤다. 뒤늦게 좀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지난 달이었는데, 또 한참 밍기적거리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통영 여행을 계획했다. 통영은 처음인데, 그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들었던 다양한 정보들이 버무려져 머릿속에 나름 근사한 가상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과 하얀 칠을 한 목재 주택, 세상의 끝인 듯 검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날카로운 눈매의 새 한 마리가 바다쪽을 일별하고 있는 풍경..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시간 운전 끝에 도착한 통영의 첫인상은 둥글둥글하다.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이지 않고, 흔하지 않지만 낯설지 않다. 실루엣은 완만하고 선명하지 않아 가지고 있는 ..
동경_140705-3 나리따 신쇼지 뒤편에 있는 공원.. 일본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다. 3개의 연못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일본식 정원으로 수백 그루의 매화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가 연못 주변에 정교하게 심어져 있어 계절별 자연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한국식 정원의 특징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조화의 아름다움, 일본식 정원의 특징은 정교하게 계산된 인공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들었는데, 이 산책로는 자연과 인공의 딱 중간지점에 있는 것 같다. 아주 섬세한 손길로 수없이 매만져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의뭉을 떤다고나 할까. 절 밖에는 혼이 빠질 만큼 떠들썩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불과 백여 미터 떨어진 뒤뜰은 무려 이 지경이다. 이런 반전이 마음에 든다. 뒤늦게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안쓰러울 정도로 종종거렸던 ..
동경_140705-2 나리타산 신쇼지(成田山新勝寺) : 나리타 공항에서 전철로 10여 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불교 사원.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절에는 에도시대에 세워진 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 다섯 개는 일본의 중요문화재란다. 첫번째 중요문화재인 니오몬.. 절의 입구이다. 1831년에 재건했으며 좌우에는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봉안되어 있다. 절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입을 닦아내는 의식.. 먹는 물 아님! 1968년에 건립된 대본당.. 호마기도를 하는 중심도장이다. 호마는 본존인 부도명왕에게 기도하는 진언밀교의 비법이다. 공양물을 바친 신도를 위해 호마기라고 하는 나무장작을 태우는데, 호마의 불은 부동명왕의 지혜를 상징하고 나무장작은 번뇌를 상징한다고 한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행하는 호마..
동경_140705-1 오늘 일정은 1. 이온몰이라는 거대 쇼핑몰에서 선물을 사고 2.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간단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 후 3. 근처 절에 들러 산책 좀 하다가 4. 나리타 공항으로 가서 귀국하는 거라고 들었다. 얼핏 듣기에는 꽤 널널하게 짜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결코 만만치 않다. 먼저 2013년 일본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라는 이온몰은 그 규모가 정말 어마무시하다. 대충 둘러보는 데에만 반나절은 걸릴 것 같은 곳에서 최소 오십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구입해야 했다.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한 시간..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러닝맨 미션 수행하듯 뛰어다녔지만, 결국 문구 코너 하나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물론 사진을 찍을 여유 따위도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