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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달.. 저기 우리 집 지붕 위에 달 올라가는 거 보이지? 저 달 우리집에서 키우는 거야. 저녁 먹기 전에 아빠가 문 열어주면 나가서 밤새도록 놀다가 새벽에 몰래 뒷문으로 들어오거든. 우리 집 달이니까 볼 때마다 나한테 100원씩 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시간의 흐름을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손톱만큼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찰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알량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애쓰고 애써봤자 지나가면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헛될 뿐이다. 오십두 해를 살아 알게 된 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뿐이고, 반짝이는 가치를 좇아 헤매다 도착한 곳은 결국 빙빙 돌아 제자리이다. 살면 살수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점점 더 모르겠다. 이게 정상이다. 인류 역사상 단 몇 명만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물며 백 명이 안 되는 무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본 적이 없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허무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
퇴근길.. 해 뜨는 거 보면서 출근해서 달 뜨는 거 보면서 퇴근. 딱히 불만은 없는데, 오늘처럼 달 밝은 날엔 목 아래 박힌 뜨거운 덩어리가 부풀어 올라 그냥 두면 위험하다. 서둘러 집에 가서 옷장 맨 아래 서랍에 숨겨둔 날개를 꺼내 오랜만에 날아올라야겠다. 서쪽 하늘 한 바퀴 가볍게 돌고 오면 좀 나아지겠지.
직박구리.. 창틀에 땅콩 몇 알을 잘게 부셔 놓아 두었더니 새들이 찾아온다. 주로 직박구리와 박새.. 대개는 먹이를 물고 황급히 날아가버리는데, 이 직박구리 녀석은 한참 머물면서 집안을 살폈다. 혹시 고마운 걸까? "이봐, 다 먹었으면 그러고 있지 말고 얼른 가서 박씨나 물어오렴..." "내가 가져온 박씨에서 뭐가 나올지 알고요?" "니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았는데, 설마 나쁜 게 나오겠어?" "땅콩 몇 알에 금은보화를 기대하는 건 아니겠죠?" "아이패드 프로 11 스페이스그레이..
트리몬.. 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마주치는 나무괴물.. 늘 표정이 바뀌는데, 오늘은 좀 피곤해 보이네.
군산 한일옥 지붕 위 고양이.. 군산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일본이 전라도 평야에서 나는 쌀을 수탈하기 위해 항구도시로 개발한 곳이라 오래된 일본식 가옥이 많다. 그런 집들이 유물로 보존되고 있는 게 아니라 아직도 현역으로 팔팔하게 사용되고 있어 독특하다. 그중 하나가 한일옥.. 1937년에 지어졌으니, 무려 80년이 넘은 건물을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군산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라 웨이팅은 기본이다. 다행스럽게도 밖에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2층에 마련되어 있는 대기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면 내려가서 먹으면 된다. 근데 2층에는 건물과 비슷한 또래의 오래된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메뉴는 무우국과 육회비빔밥..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질 만큼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그래서 흉내내..
저기 어디쯤에.. 그날 이후, 죽음은 구두 뒤축에 붙은 껌딱지처럼 걸을 때마다 찔꺽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수술 부위에 불길한 통증이 느껴질 때, 암 보험 가입하라는 홍보 전화를 받았을 때(이미 걸렸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면 그만이지만), 입원실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코드블루 방송이 환청으로 들려올 때, 유혹을 못 견디고 마신 캔맥주의 차가운 쓴맛이 죄의식과 함께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때, 자다가 눈을 떴는데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샤워하다가 뒤에서 낯선 인기척이 느껴질 때, 퇴근길 지하철 유령같은 사람들 틈에 끼어 집에 돌아올 때, 본의 아니게 미래를 계획해야 할 때... 느껴진다. 저기 어디쯤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은 무죄.. 모퉁이를 돌아도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재미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에서 살짝 고개만 들어도 눈물 나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아무도 땅에 코 박고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화나는 일, 더러운 일, 짜증나는 일만 눈 빠지게 들여다 보면서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한탄하면 어쩌란 말이냐. 세상은 아무 잘못 없는데...
나무의 시간..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잎이 나고 꽃이 피고 결국에는 열매를 맺는다. 겨우 오분 정도 지켜보고 "나무는 움직이지 않아"라고 단정짓는 것은 얼마나 성급한 일인가. 변하지 않으려 버텨 봤자 소용 없다. 당장은 의미 없어도 어떻게든 꼼지락거려 보는 게 낫다. 5mm만큼 키가 자라고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를 쓰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파주삼릉의 가을.. 파주삼릉을 처음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숨이 쉬어졌다. 몇 개월만에 처음으로 허파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나무와 꽃, 하늘.. 모든 것이 내가 살아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무덤에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세상에 복귀한 기분.. 중증 질환을 앓고 난 후 소소한 풍경에서 진한 감동을 느끼는 신비한 능력을 보유하게 된 걸까. 어찌됐건 그 후 파주삼릉은 내 인생스팟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는 아이유의 , 아서 프랭크의 등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main/main.do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 조선왕조실록은 정말 대단한 기록물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한 말, 그에 대한 왕의 대답, 매일 머리 싸매고 논의한 갖가지 사안들, 다툼들, 전염병과 가뭄, 홍수로 인한 근심, 누구를 등용하고 누구를 내쳐야 하는지, 누구를 벌주고 누구를 사해야 하는지, 심지어 유성이 어디에서 나타나 어디로 떨어졌는지에 대한 세세한 기록까지 포함되어 있다. 나라가 휘청할 정도의 큰 사건부터 실소를 머금게 되는 시시콜콜한 사건까지..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기록한 500년이 넘는 시간의 흔적.. 현명한 후손들은 그 내용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온라인 공간에 통째로 올려 놓았다. 가끔 짬 날 때마다 랜덤으로 ..
"오빠, 그거 다 가짜야.." "오빠, 그거 다 가짜야. 억지로 애쓰지 마. 그냥 편한 얼굴로 가만 있어. 그게 진짜 문상태지." 드라마 보다가 또 끅끅 대고 울었다. 요즘 들어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는...
기다리는 나무들.. 나무는 가만히 서서 비를 맞고 바람을 맞고 시간을 맞는다. 나무는 대열을 이탈하거나 털썩 주저앉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나무는 몰래 키를 키워 하늘에 닿기를 기다리고 조바심에 폭주하는 인간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땅속 깊이 숨겨진 진심을 꾸역꾸역 끌어올리길 기다린다. 나무는 웬만해선 기다림에 지치지 않는다.
나무들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1. 속초 가는 길에 화상 입은 나무들이 유령처럼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 끔찍했던 작년 산불의 흔적.. 처음 접하는 처참한 모습에 차에서 내려 한동안 말도 못하고 망연자실 서 있었다. 불탄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던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집앞 공터에 서있던 메타세콰이어 십여 그루가 베어진 걸 발견했을 때도 잉잉 울면서 집에 들어왔던 아내다. 비교적 둔한 감성의 소유자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여린 마음에는 더 감당하기 힘든 풍경이었으리라. 2. 산불이 나면 숲은 20년 이상 경과해야 불 나기 전의 70~80%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나무의 경우 산불 이전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동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토양 미생물이 활동을 재..
그림을 그린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 아주 어렸을 때 피아노를 시도했지만 빠르게 포기했다. 그때 꾸준히 계속했으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원하는 수준은 휘파람 불듯이 내가 원하는 음을 자유롭게 연주하는 정도인데, 바이엘 상하권을 거쳐 체르니에 도달하는 동안 음표를 보고 기계적으로 손가락 놀리는 기능만 발달하고, 정작 악보가 없으면 아무것도 칠 수 없었다. 그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포기했다. 그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라고 회한에 젖는 건 쓸 데 없고 멋대가리도 없으니까 많이 늦었지만 일단 시작한다. 남의 기준에 맞추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내는..
카페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 또 웅성거리는 카페에 나와 앉아 있다. 굳이 헤드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애써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무시해가면서 잘 읽히지 않는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렇다. 읽는 게 아니라 들여다 보는 게 맞다. 페이지는 넘어가지만 머리에 입력되는 건 없으니까. 예가체프는 어느 카페에 가든 실패할 확률이 적다. 강한 산미에 웬만한 디테일은 뭉뚱그려지기 때문이다. 카페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 집에 있을 때보다 1.5배 정도. 천정의 높이, 벽의 재질, 테이블 배치, 의자 등받이의 각도, 조명, 음악 등에 따라 최대 3.2배까지 느려지기도 한다. 장수의 비결은 죽는 나이를 늦추는 게 아니다. 백살까지 살았더라도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정신 못차리는 사이에 삶이 끝난다면 장수했다고 보기 어렵다. 중요한 건 시간이 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