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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성지.. 산책.. 양평 물가를 산책하다 보면 괜히 무서워진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데 앞에서 뒤에서 뭔가가 계속 서성이는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빨라진다. 햇살 반짝이는 날도 그런데 흐린 날에는 거의 뛰어야 한다. 차라리 뭔가가 불쑥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새들이 후다닥 날아오르거나 바람결에 나무가 움찔거려 오금이 조여든다. 강과 하늘과 새.. 강은 땅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시간을 품고 흘러 바다로 나가 차곡차곡 쌓인다. 하늘은 모든 과정을 멀찌감치 떨어져 살피는데 가끔 내킬 때만 아래로 내려와 못난 얼굴을 비빈다. 그 사이에서 새들만 분주하다. 나무.. 나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시간의 눈치를 보고 강의 눈치를 보고 하늘의 눈치를 본다. 나는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을 자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있..
고물 새것일수록 각광받는 요즘 세상, 나이들수록 근사해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가장 쉬운 길은 내 자리에서 내 빛깔을 유지하며 주위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천천히 희미해져 가는 것... 부디 욕심 부리다 처치곤란 고물단지 신세는 되지 말기를..
기다리지 말 것 기다리는 것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은 없다. 소파에 길게 누워 기다리더라도 진이 빠진다. 하물며 온 몸과 온 마음을 기울여 기다리다 보면 정수리로 체내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기다리면 얼굴이 푸석거리고 일주일을 기다리면 몸살이 나고 한달을 기다리면 늙어버린다. 그렇게 일년을 꼼짝 않고 기다리면..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 부서질 수도 있다. 곱게 오래오래 살려면 기다리지 않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 별 거 아니다.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다음 시간은 흐르듯 와서 차곡차곡 쌓인다.
2016년 가을.. 조바심이 나를 삼켰다. 나는 뭉뚱그려져 의미없이 구르다 조금씩 작아져 간다. 현재에 충실하려면 미래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려야 한다.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나에게 좀 더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간신히 멈춰 섰더니 가을이 한창이다.
옥탑방 노을 본방사수.. 어제는 저자회의 때문에 근사한 노을을 놓쳤다. 화장실 갔다가 창밖 건물 사이로 보이는 붉은 하늘을 보고, 당장 달려나가고 싶어 근질근질했는데, 결국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넘쳐나는 하늘 사진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쓰리던지. 그래서 오늘은 일찌감치 옥상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 기다렸다가 시작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노을 감상을 했다.
홍콩 _ 마지막 날 eslite.. 아침 일찍 바리바리 짐 싸들고 나와서 찾은 에슬릿.. 홍콩에서 제일 큰 서점이라는데, 규모보다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정갈한 디스플레이, 책이 돋보이는 조명, 여유로운 동선.. 어딜가나 북적거리는 홍콩인데, 여긴 한적하다. 도서전 영향인가? 서점은 부러운데, 정작 책은 별로 볼 게 없다. 종수나 품질 면에서 우리나라가 한참 앞서 있다는.. 그러고 보면 홍콩은 뛰어난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그냥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어디서나 껍데기는 보이는데, 알맹이는 찾을 수 없다는.. 그런데 말이지. 내 좁은 시야로 파악이 안 되는 거대한 뭔가가 도사리고 있는데.. 삼박사일 동안 발톱만 더듬거리고 깝죽대는 건지도 모르겠다. IT 코너는 달랑 두 칸.. 참고할 만한 프로그래밍 책을 찾아 보려고 아침..
홍콩 _ 셋째 날 지하철(MTR).. 숨막히게 더워서 웬만한 거리는 지하철 타고 이동.. 이젠 홍콩 지하철에 적응이 끝나 옥토퍼스 카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리고 홍콩의 거리는 의외로 깨끗하다. 서울과 도쿄의 중간 정도.. 딱 좋다. 오늘은 계획 없이 떠돌아 다닐 예정.. 관광지가 아닌 홍콩의 민낯을 보겠어.. 라고 야심차게 출발했는데, 10미터만 걸어도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덥다. 지나가다 서점이 눈에 들어와 반가운 마음에 무조건 입성. 실내와 실외의 기온차는 천국과 지옥 같다. 직업은 어쩔 수 없어 컴퓨터 관련 서적부터 점검.. 딱 두 칸.. 프로그래밍 서적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종류별로 딱 한 권씩만 갖춰 놓았다. 서점에서 나와 바로 스타벅스로 직행.. 우리나라에 없는 메뉴가 있어 호기롭게 시켰는데 홍차 ..
홍콩 _ 둘째 날B 피크 트램.. 홍콩 최고의 야경을 보려면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야 한다. 빅토리아 피크에 오르는 가장 일반적이고 오랜 방법인 피크 트램.. $83(HKD)면 왕복에 스카이 테라스 포함이다. 도착했을 때 줄 서 있는 거 보고 갑자기 올라가기 싫어졌는데, 일행과 만나기로 해서 어쩔 수 없이 대열에 합류,, 이 더운 날,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빼곡하게 모여 있으니 숨 쉬기조차 힘겹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앞쪽에서 들리는 걸쭉한 한국어.. "에혀.. 남산처럼 케이블카를 만들지 왜 기차를 만들었댜?" ㅎㅎㅎㅎㅎ 그러게 말이에요. 할머니.. 40분 만에 힘겹게 올라탄 피크 트램.. 자리를 잘못 잡아 앉지도 못했다. 경사가 꽤 가파르기 때문에 입석은 극기 훈련 수준이다. 빅토리아 피크 스카이 테라스에서..
홍콩 _ 둘째 날A 홍콩대학교.. THE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대학 순위 2016년판에 따르면 홍콩대학교는 44위에 랭크되어 있다. 26위인 싱가폴 국립대학, 42위인 북경대학, 43위인 동경대학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네 번째이다. 참고로 서울대학교는 85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100위권 안에 들어 있고, 포항공대와 카이스트, 성균관대학교가 200위권 안에 들어 있다. 물론 대학을 평가해서 일렬로 줄 세우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기준이 얼마나 공정한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교육이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고, 특히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질은 그 나라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도 좌우한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학의 방향을 잡는 일은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
홍콩 _ 첫째 날 7월 20일 7시 50분 출발.. 맙소사. 일어나 보니 6시 20분이다. 대충 얼굴에 물만 적시고 가방에 옷 몇 개 쓸어 담아 집을 나섰다. 허겁지겁 공항에 도착하니 7시 20분.. 근데 들어가는 곳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착하게 기다렸다가는 비행기를 놓칠 게 뻔하다. 제일 착하게 생긴 보안요원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스탭들이 드나드는 쪽문으로 들여보내 줬다. 검색대에서도 출국 심사장에서도 땀 뻘뻘 흘리며 하소연해서 결국 7시 40분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환전도 못하고, 홍콩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렇게 해외여행을 떠났다. 공항에서 핸드폰에 심카드($118HKD)를 장착하고.. 시내까지 데려다 주는 직행 열차인 SEL 탑승($100HKD).. 화려한 트램을 보니 비로소 홍콩에 왔다는 게 실감이..
옥탑방 하늘 모음..
어느 날 문득 찾아 헤매던 비밀통로를 발견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그건 마치 "나는 맛있고 싱싱한 횟감이에요!"라고 목놓아 외치는 도다리 꼴이다. 나를 남에게 드러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소진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다. 나는 스스로 충만하고 홀로 완전해야 한다.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외부로부터 침범 당하지 않도록 견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오도카니 내 앞에 놓인 삶을 응시한다. 의심하지 말고..만두를 판다는 건 위장이고, 사실 이곳에서는 구름을 밀제조하고 있다. 알다시피 서울경기 지역의 구름은 당인리에 있는 국영 공장에서 만들어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다. 일부 까탈스런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만한 때깔 좋은 구름을 소량 맞춤 제작..
길냥이.. 태어나 보니 고양이었다..오도카니 살기엔 날이 추웠다. 노란 세상은 수상하고 하루는 터무니없이 길었다. 꼬불쳐 둔 생선 한 마리 없이 겨울이 다가오는 중이다. 타고난 긴장 덕분에 지금껏 버텨왔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이 아득하다. 하지만 근심은 그때 뿐이다. 어차피 살아질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게 자동차이고, 모든 자동차 밑은 훌륭한 은신처이다. 쓰레기 봉지 뒤지는 기술만 익히면 평생 굶지는 않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달겨드는 적대적 인간이 말썽이지만, 친하게 지낼 생각 없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어쩌랴. 태어나 보니 고양이었고, 정신 차려 보니 혼자였다. 다만, 버텨야 할 시간들이 버거울 뿐이다. 욕심인 줄은 알지만, 오늘따라 따뜻한 우유 한 잔이 땡긴다. 그나저나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 그리움은..
통영-2 지금까지는 갖고 싶은 거 딱 하나만 얘기해 보라고 하면, 한참 고민했는데.. 이제 망설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는 장사도가 갖고 싶다.. 장사도 가는 뱃길.. 여기가 바로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다! 배가 뜨니 어김없이 따라붙는 갈매기.. 요즘 갈매기들의 꿈은 새우깡이다. 하긴.. 높이 날 궁리를 하기엔 유혹이 너무 크겠다. 어찌 갈매기들만 탓할 수 있으랴.. 그러니까.. 날개가 있다고 모두 자유로워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40여 분만에 도착한 장사도.. 잠시 입 다물고 산책.. 통영→한려수도일원→장사도 왕복 요금 성인 21,000원, 장사도 입장료 8,500원, 합계 29,500원.. 통영유람선협회의 홈페이지는 여기... 서울 올라오기 전에 에서 점심 먹고, 장시간 운전에 대비해 찐한 커피 복용하러 들른 ..
통영-1 떠돌다 지쳤을 때 뚝 떨어져 오래 머물고 싶은 곳.. 통영 딱히 바쁜 일도 없었는데 여름 휴가 시즌을 놓쳤다. 뒤늦게 좀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지난 달이었는데, 또 한참 밍기적거리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통영 여행을 계획했다. 통영은 처음인데, 그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들었던 다양한 정보들이 버무려져 머릿속에 나름 근사한 가상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과 하얀 칠을 한 목재 주택, 세상의 끝인 듯 검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날카로운 눈매의 새 한 마리가 바다쪽을 일별하고 있는 풍경..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시간 운전 끝에 도착한 통영의 첫인상은 둥글둥글하다.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이지 않고, 흔하지 않지만 낯설지 않다. 실루엣은 완만하고 선명하지 않아 가지고 있는 ..
오늘도 하늘만 나에게 말을 건다.. 아주 잠깐 사람 자체가 싫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거 같다. 세상엔 만나서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다만 그 사람들이 내 주위에 없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들의 관심사 밖에 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반대로 1분을 같이 있어도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고민 되는 사람들, 한 시간 내내 대화를 나눠도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 하루를 같이 지내도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은 주위에 넘쳐 나는데, 물론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꽉 막혀 있는 나에게 심각한 장애가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내가 요즘 뚫려 있는 서쪽 하늘만 계속 바라보게 되는 것은 요즘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적당한 거리에서 적절한 얘기를 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