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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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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새것일수록 각광받는 요즘 세상, 나이들수록 근사해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가장 쉬운 길은 내 자리에서 내 빛깔을 유지하며 주위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천천히 희미해져 가는 것... 부디 욕심 부리다 처치곤란 고물단지 신세는 되지 말기를..
기다리지 말 것 기다리는 것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은 없다. 소파에 길게 누워 기다리더라도 진이 빠진다. 하물며 온 몸과 온 마음을 기울여 기다리다 보면 정수리로 체내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기다리면 얼굴이 푸석거리고 일주일을 기다리면 몸살이 나고 한달을 기다리면 늙어버린다. 그렇게 일년을 꼼짝 않고 기다리면..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 부서질 수도 있다. 곱게 오래오래 살려면 기다리지 않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 별 거 아니다.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다음 시간은 흐르듯 와서 차곡차곡 쌓인다.
2016년 가을.. 조바심이 나를 삼켰다. 나는 뭉뚱그려져 의미없이 구르다 조금씩 작아져 간다. 현재에 충실하려면 미래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려야 한다.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나에게 좀 더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간신히 멈춰 섰더니 가을이 한창이다.
옥탑방 노을 본방사수.. 어제는 저자회의 때문에 근사한 노을을 놓쳤다. 화장실 갔다가 창밖 건물 사이로 보이는 붉은 하늘을 보고, 당장 달려나가고 싶어 근질근질했는데, 결국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넘쳐나는 하늘 사진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쓰리던지. 그래서 오늘은 일찌감치 옥상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 기다렸다가 시작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노을 감상을 했다.
옥탑방 하늘 모음..
어느 날 문득 찾아 헤매던 비밀통로를 발견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그건 마치 "나는 맛있고 싱싱한 횟감이에요!"라고 목놓아 외치는 도다리 꼴이다. 나를 남에게 드러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소진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다. 나는 스스로 충만하고 홀로 완전해야 한다.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외부로부터 침범 당하지 않도록 견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오도카니 내 앞에 놓인 삶을 응시한다. 의심하지 말고..만두를 판다는 건 위장이고, 사실 이곳에서는 구름을 밀제조하고 있다. 알다시피 서울경기 지역의 구름은 당인리에 있는 국영 공장에서 만들어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다. 일부 까탈스런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만한 때깔 좋은 구름을 소량 맞춤 제작..
길냥이.. 태어나 보니 고양이었다..오도카니 살기엔 날이 추웠다. 노란 세상은 수상하고 하루는 터무니없이 길었다. 꼬불쳐 둔 생선 한 마리 없이 겨울이 다가오는 중이다. 타고난 긴장 덕분에 지금껏 버텨왔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이 아득하다. 하지만 근심은 그때 뿐이다. 어차피 살아질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게 자동차이고, 모든 자동차 밑은 훌륭한 은신처이다. 쓰레기 봉지 뒤지는 기술만 익히면 평생 굶지는 않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달겨드는 적대적 인간이 말썽이지만, 친하게 지낼 생각 없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어쩌랴. 태어나 보니 고양이었고, 정신 차려 보니 혼자였다. 다만, 버텨야 할 시간들이 버거울 뿐이다. 욕심인 줄은 알지만, 오늘따라 따뜻한 우유 한 잔이 땡긴다. 그나저나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 그리움은..
오늘도 하늘만 나에게 말을 건다.. 아주 잠깐 사람 자체가 싫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거 같다. 세상엔 만나서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다만 그 사람들이 내 주위에 없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들의 관심사 밖에 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반대로 1분을 같이 있어도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고민 되는 사람들, 한 시간 내내 대화를 나눠도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 하루를 같이 지내도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은 주위에 넘쳐 나는데, 물론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꽉 막혀 있는 나에게 심각한 장애가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내가 요즘 뚫려 있는 서쪽 하늘만 계속 바라보게 되는 것은 요즘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적당한 거리에서 적절한 얘기를 건네..
비가 와도 해는 진다.. 해 떠 있을 때 비 오는 경우는 몇 번 봤는데, 비 오는 중에 노을 지는 건 처음 본 것 같다. 그러니까 비가 와도 비가 오지 않을 때랑 똑같이 해가 지는데, 보이지 않을 뿐인 거다. 오늘 하늘은 나에게 그 사실을 들켰다.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잠수대교 남단에서 내렸다. 하늘 좀 보다가 다시 버스 타고 집에 올 생각이었는데, 괜히 터벅터벅 걷기 시작해서 급기야 마포대교까지 왔다. 출발 지점부터 본의 아니게 함께 걸은 양산 쓴 아주머니를 한강대교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추월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은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느리게 흘렀고, 세상은 오랜만에 충분히 선명했다. 걷다 보면 자질구레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제법 오랫동안 생각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이 삐그덕거리며 움직이게 되고, 넘쳐나는 칼로리들이 소모되며, 무엇보다 핸드폰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더구나 한강에는 공짜로 걷기 미안해질 정도의 품질 좋은 길이 마련되어 있다. 도대체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잠수대교 북단에서 마포대교까지 ..
구해줬어야 했나? 날 원망하진 않았겠지?형광등 박스 안에 들어간 파리가 세 시간째 웽웽거리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제 발로, 아니 제 날개로 날아들어간 길을 못찾는 미련한 생물이라고 혀를 차다가도 괜히 동질감 비슷한 감정이 들어 신경 쓰인다. 박스를 열어 구해줄까 세 시간째 고민 중인데, 그 또한 주제 넘은 간섭인 것 같아 망설이고만 있다. 예기치 못한 파리채에 맞아 박살나는 것보다는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날개짓하다 생을 마치는 게 좀 더 나은 삶 아닐까? 결국 자리를 피해주기 위해 불 끄고 밖으로 나와 거실에서 잠을 청한다.
옥탑방에 밤은 깊어... 전망 하나 보고 집을 구했는데, 정작 옥상에 나갈 여유가 없다.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옷장 맨 아래 서랍에서 구겨진 날개를 꺼내 옥상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겨드랑이 아래쪽에 다시 붙여보려고 애를 쓰지만, 체중이 불어서 그런지 잘 붙지 않는다. 날개가 제대로 붙어야 밤하늘을 날카롭게 가르며 제비처럼 날아오를 텐데. 그래야 걸어서는 차마 가기 힘든 "소금빌라"에 가볼 수 있을 텐데. 음침한 언덕 위에 피어 있는 그 빌라 주차장에는 말라비틀어진 심장 하나가 먼지처럼 굴러다니고, 수챗구멍 어딘가엔 백만 년 전에 흘린 영혼 몇 방울이 무심히 고여 있을 텐데. 날개가 제대로 붙어야 잃어버린 심장과 영혼을 회수해 올 텐데. 옥상 귀퉁이에 앉아 밤이 깊도록 구겨진 날개와 씨름하지만 피둥피둥한 내 겨드랑이엔 날개를 붙..
반려나무, 내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는 이유... 나는 동물보다는 식물에 더 동질감을 느끼고 교감도 깊은 편이다. 인간의 좋은 친구이기 때문에 개를 먹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내 입장에서는 식물 역시 먹으면 안 된다. 물론 배추나 깻잎을 보며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꽤 오랫동안 사귄 나무가 최소한 인간 친구보다 많다. 한강 둔치에 서 있는 아래 나무 역시 사귄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첫눈에 반해 꾸준히 찾고 있는 친구 중 하나이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래서 세상은 축제란다...
내 안에 너 있다 안녕! 난 니 뱃속에 있는 똥이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아직 니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손가락이나 눈알이 니 일부이듯이... 물론 내일 아침에는 너를 벗어나게 될 거야. 넌 몇 시간 동안 니 뱃속에 품고 있는 나를 생전 처음 보는 끔찍한 것인양 찌푸리며 흘깃 살펴보고 미련없이 흘려보내겠지. 사실 좀 억울해. 난 니 뱃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과의 일부였고, 고등어의 일부였거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달게 익어가던 내가, 깊은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던 내가 어쩌다 니 뱃속에 들어가 이런 몰골이 됐는지... 아니, 됐어. 너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공치사 따위 듣고 싶지 않아. 그냥 나를 혐오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만 참아줬으면 해. 비록 몇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한몸이었다..
한 발짝 떨어져야 비로소 보인다 그러니까 밑도 끝도 없이 섞여서 허우적대지 말고 가끔 빠져나와 혼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