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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여행

동경_140704-1


오늘은 공식 일정 없이 자유여행.. 컨디션이 안 좋은 정차장님은 가이드가 마련한 코스를 따라갔고, 나는 비행기 탈 때부터 마음 먹었던 동경대학교를 방문하기 위해 혼자 출발.. 맘 같아선 그냥 호텔방에서 하루 종일 뒹굴고 싶구만...



동경대학교에 가려면 도다이마에(동대앞)역에 가야 한다. 이케부쿠로역에서 마루노우치선을 타고 세 정거장 지나 가스가역에서 내려 난보쿠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 참 간단한데.. 한 시간 넘게 헤맸다. 하긴 서울에서도 10분이면 도착할 목적지를 1시간 넘게 걸려 도착하는 게 예사인 병적인 길치니까 이 정도면 양호한 거라 할 수 있다.



겨우겨우 도착한 동경대학교.. 수위실이 고풍스럽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게 주임무인 대학교가 겉모습 만큼은 미련스러울 정도로 옛 것을 고집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전통과 새로움의 대비는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잘린 나무 밑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잘린 나무 밑동 위에 새로운 싹이 자라고 있다. 좀 작위적인 느낌도 들지만, 덕분에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은 무조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역사와 전통 위에 아주 공을 들여 새로운 씨앗을 심는다. 그 씨앗이 자라면 외국에서 받아들인 거라도 온전히 일본 문물이 되는 것이다. 어제 에비스 박물관에서 봤던 일본 맥주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발견했었다. 아마도 이런 접목 방식이 일본 경제와 문화 발전의 근본적인 힘 아닐까?



으리뻑적지근한 새 건물 올리는 게 지상과제인 국내 대학들의 모습과는 참 다른 행보다. 근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구닥다리 환경은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래도 세계 대학 순위 30위 안에 꾸준히 드는 걸 보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13~14년에는 23위까지 올라갔네. 참고로 서울대는 44위, 카이스트가 56위, 포항공대가 60위(노란 글씨 클릭)..



여기 있는 자전거는 그야말로 일부에 불과하다. 캠퍼스 곳곳에 자전거가 널려 있는데, 이 수많은 자전거의 주인들은 다 어디 있는 걸까? 꽤 오랜 시간 머물렀는데, 학생은 몇 명밖에 보지 못한 것 같다. 설마 다들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미친듯이 공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저렴한 가격에 패스트푸드를 팔고 있는 트럭.. 교내에 저런 게 있으니 특이해 보인다. 하나 먹어보려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패스~



여기가 아마도 공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살짝 들어가 봤는데.. 허름한 강의실에 미끈한 최신형 아이맥 수십 대가 도열해 있는 모습이 정말 기이해 보였다. 



여긴 아마도 법대? 빗줄기가 거세져서 잠시 피신...  



도서관 역시 고풍스럽기 그지 없다. 저 육중한 철문과 음침한 복도.. 왠지 포르말린 냄새가 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열람실까지 깊숙히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최소 100만살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제지당했다... 사실 제지한 게 아니라 뭔가를 설명하려는 거 같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눈만 껌벅이다가 조용히 나왔다.    



야스다 강당은 공사중..이 밑에 구내식당이 있다고 들었는데...



헐... 설마 이 음산하게 생겨먹은 계단이 중앙식당으로 내려가는 통로일 줄이야. 바로 앞에 두고 한참 헤맸다. 뭔가 끔찍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 내려가도 괜찮은 걸까? 쭈볏쭈볏..  



내려가 보니 다행스럽게도 식당 맞다. ㅎㅎ 심지어 꽤 넓고 사람들도 많다.  



구내식당답게 저렴하고 간단한 메뉴 위주이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제일 무난해 보이는 덴쁘라(310엔)를 골랐다. 자판기 앞에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식권을 구입한 후 아래로 내려가 주방에 건네줬더니 바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 간단한 메뉴에도 면을 소면으로 할지 우동으로 할지, 국물의 농도는 묽게 할지 진하게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의사소통이 어려워 한참을 버벅거리다 결국 면은 소면으로, 간장은 조금만 넣는 형태로 주문을 마쳤다. ^ ^ ;;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 푸하하 이거 하나 먹자고 그 생난리를 쳤나. 단무지 하나 나오지 않는 소박한 점식식사였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주문 시스템에 익숙해진 여세를 몰아 몇 가지 메뉴를 더 시켜 먹었다. ㅋ   



해외여행을 가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자꾸 뉴욕 여행의 경험과 비교하게 되는데, 당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몇 시간 머물었던 게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 동경대학교 방문에도 기대가 좀 컸던 것 같다. 동경대학교는.. 껍질이 두껍고 견고해서 몇 시간 살펴본 거로는 도저히 잠재된 에너지를 감지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성과라면.. 4년 전에 꿨던 꿈이 아직 유효하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동경대 앞에는 아직도 고서점들이 많다. 혁신과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를 구분하는 지혜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세계적인 지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