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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개비.. 1. 1년 8760시간 중 딱 1시간 정도 담배가 땡긴다. 오늘 오후 3시가 바로 그 시점이었다. 참을까 하다가 영업팀 이부장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회사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흡연실에 구겨져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열려 있는 창으로 구름이 한가득이다. 내가 뱉은 담배 연기가 가당치도 않게 구름과 어우러졌다. 오랜만에 어지러웠다. 2.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뛰려고 하면 자빠지고 쉬려고 하면 밀어댄다. 갖고 싶은 것들은 철벽같은 쇼윈도 안에 놓여 있고 내 주위엔 쓸모없는 잡동사니만 넘쳐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꼭꼭 숨고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똥파리처럼 달려드는데 천성이 어눌해서 욕도 제대로 못한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따지고 들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3. 후..
급속 충전 설명서 온몸에 힘을 빼고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시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구석구석 흐르게 내버려 둡니다. 햇살이 있으면 좋고 비가 와도 상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는 기술입니다. 정수리에도 어깨 위에도 심장에도 뭐 하나 올려져 있으면 곤란합니다. 가만가만 조용히 숨을 쉬고 그 호흡에 자신을 얹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슬쩍, 마치 늘상 하는 행동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호흡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잘 안 되더라도 조바심 내지 마세요. 이 단계까지 가는 데 1년 넘게 걸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안 되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호흡을 타고 조심스럽게 조금씩 떠올라 상승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주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나는 미세한 존..
똥보다 방귀 왕이 밥상에 똥을 쌌다.어쩌다 실수로 싼 게 아니라 밥상이 들어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쌌다. 더러운 냄새에 화가 난 광대는 왕이 똥 싸는 짓을 멈출 때까지 말할 때마다 방귀를 뀌기로 했다. 백성들은 말할 때마다 방귀를 뀌는 광대의 희안한 능력에 열광했다. 하지만 왕의 똥을 된장이라 믿는 신하들과 왕과 함께 똥 싸는 재미에 빠진 왕족들은 일제히 광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광대의 방귀를 따라하던 추종자들은 그들의 비난을 비난하며 일제히 방귀를 뀌어댔고, 광대의 방귀를 시샘하던 마술사들은 말하는 동안 트림을 하는 희안한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백성들은 더 희안한 능력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신하들은 방귀금지법을 만들어 방귀뀌는 광대들을 잡아들였으며, 왕과 그 일가의 똥은 온 천지..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법 제일 공평한 공부는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고개만 쳐들면 시작할 수 있으니까. 하늘 아래 모두가 고만고만하다는 것만 인정하면... 살아가는 게 그렇게 힘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센서의 성능이 급격하게 좋아집니다.정수리 어디쯤에 있는 이 센서는 주위의 색, 온도, 습도, 몸 상태 등을 분석하여 시간의 속도를 파악한 후 심장 박동의 형태로 알려줍니다. 어제는 심장이 급격하게 뛰어 길 모퉁이에 한참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시간이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내가 흔들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바람이 지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푸석푸석 늙어버려서 햇살을 받아도 더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 날이 저문다. 오늘, 미친듯이 파고들고 싶은 대상을 찾았다. 짐을 쌀까 3초 정도 고민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날이 저물면 끝이다. 나는 구르던 방향으로 계속 굴러야 하고,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게 통설이다. 그게 제일 슬프다. 2. 언제나 그렇듯이 가슴 뛰고 폼 나는 일은 좀 더 싱싱한 아이들의 몫이다. 그게 제일 짜증난다. 3. 나도 싱싱한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난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못생긴 세상에 슬퍼하고 짜증내면서... 그게 제일 후회된다. 가슴 뛰지 않는 일에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기타 등등에 한눈 팔지 말고 곧바로 핵심에 도달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우선순위에 올리고 지루한 일은 시간 많은 젊은 애들에게 미뤄야 한다. 취하지..
양근성지.. 산책.. 양평 물가를 산책하다 보면 괜히 무서워진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데 앞에서 뒤에서 뭔가가 계속 서성이는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빨라진다. 햇살 반짝이는 날도 그런데 흐린 날에는 거의 뛰어야 한다. 차라리 뭔가가 불쑥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새들이 후다닥 날아오르거나 바람결에 나무가 움찔거려 오금이 조여든다. 강과 하늘과 새.. 강은 땅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시간을 품고 흘러 바다로 나가 차곡차곡 쌓인다. 하늘은 모든 과정을 멀찌감치 떨어져 살피는데 가끔 내킬 때만 아래로 내려와 못난 얼굴을 비빈다. 그 사이에서 새들만 분주하다. 나무.. 나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시간의 눈치를 보고 강의 눈치를 보고 하늘의 눈치를 본다. 나는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을 자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있..
고물 새것일수록 각광받는 요즘 세상, 나이들수록 근사해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가장 쉬운 길은 내 자리에서 내 빛깔을 유지하며 주위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천천히 희미해져 가는 것... 부디 욕심 부리다 처치곤란 고물단지 신세는 되지 말기를..
기다리지 말 것 기다리는 것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은 없다. 소파에 길게 누워 기다리더라도 진이 빠진다. 하물며 온 몸과 온 마음을 기울여 기다리다 보면 정수리로 체내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기다리면 얼굴이 푸석거리고 일주일을 기다리면 몸살이 나고 한달을 기다리면 늙어버린다. 그렇게 일년을 꼼짝 않고 기다리면..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 부서질 수도 있다. 곱게 오래오래 살려면 기다리지 않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 별 거 아니다.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다음 시간은 흐르듯 와서 차곡차곡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