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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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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 아주 어렸을 때 피아노를 시도했지만 빠르게 포기했다. 그때 꾸준히 계속했으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원하는 수준은 휘파람 불듯이 내가 원하는 음을 자유롭게 연주하는 정도인데, 바이엘 상하권을 거쳐 체르니에 도달하는 동안 음표를 보고 기계적으로 손가락 놀리는 기능만 발달하고, 정작 악보가 없으면 아무것도 칠 수 없었다. 그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포기했다. 그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라고 회한에 젖는 건 쓸 데 없고 멋대가리도 없으니까 많이 늦었지만 일단 시작한다. 남의 기준에 맞추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내는..
예전엔 말이야.. 예전엔 말이야. 내 안에 사랑이 가득했어. 정확히 말해서 뱃속에 사랑이 가득했지. 날 좋은 오후엔 번갈아 내 뱃속에 연인들이 들어왔거든. 조심조심 들어와서는 흔들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페달 밟는 노동 따위가 뭐가 그리 재미 있다고 10초마다 웃음이 터지곤 했다니까. 보통 5분쯤 지나면 안정되는데, 그때부터는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거나 물결에 부서지는 햇살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좀 로맨틱한 커플은 서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지. 그러다 갑자기 용기를 낸 남자가 열심히 페달을 밟아 물 한 복판으로 나가거든. 다른 오리배들과 멀찍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후에는 쭈뼛거리며 뽀뽀를 시작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한 시간쯤이야 순식간에 지나가지. 뭐, 예전엔 그랬단 말이야. 지금은 보시다시피 뱃속이 텅 비었어. 너..
노란 꽃 프로젝트.. 길 가다 꽃이 피어 있으면 쪼그리고 앉아 한참 들여다 본다. 요즘 멈춰 서서 꼼꼼히 들여다 보는 대상이 꽤 많아졌다. 어쩌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서 듣는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는 하현우의 '돌덩이'를 열다섯 번 따라 불렀다. 완벽하게 외울 때까지 최소 삼 주 이상은 이 노래만 듣게 될 전망이다. 점심시간에 내가 원하는 메뉴를 먹기 위해 혼밥을 시작한지 꽤 됐다. 20분 걸어서 미리 찍어둔 식당에 도착해 20분 동안 먹고 다시 20분 동안 복귀한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음에 드는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으로 채우기 위해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꾸역꾸역 보내야 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이 불합리한 시..
반짝이는 시간 위에 나를 띄워 놓는다.. 발버둥쳐도 소용 없다는 걸 알았다. 벗어날 궁리 하지 말고 헛된 꿈도 꾸지 말고 관대한 시간의 흐름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것. 욕심 부리거나 서두르다가 놓칠 수 있는 소중한 것부터 챙기는 것. 의심과 허무, 그밖의 모든 집요한 암세포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나에게 주어진 작은 영토를 지켜 내는 것. 딱 요만큼.
POINT.. 요즘 부쩍 집이 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며칠 게으름 피우고 치우지 않으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읽고 있는 책에서 "남자는 책상에서 힘을 얻는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격하게 공감하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나에게 걸맞는 적당한 책상을 찾아봤는데, 구입해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아쉽게 접었다. 방마다 꽉꽉 차 있고, 벽마다 주렁주렁 걸려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좀 더 큰 집을 마련해야 할까? 적당한 집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80평 아파트에 살면 좀 넉넉해질까? 아무리 큰 공간이 있어도 어느 순간 다 채우고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게 인간이다. 우리는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도무지 비어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영역을 넓히기 위해 애쓰고 넓힌 영역을 채우기 위해 애쓰고... 끊임없..
선인장 오누이.. 주말 내내 지켜봤는데, 얘네 둘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붙어 앉아 창밖만 보고 있더라. 해가 지면 노란 선인장 아빠와 빨간 선인장 엄마가 뚜벅뚜벅 집 앞에 나타날 것 같아 나도 자꾸 창밖을 보게 되네.
돌고 돌아 도착한 내 자리.. 제대한 아들에게 방을 내주고 이리저리 떠돌다 마련한 내 자리. 아내 발치에 쪼그리고 앉아야 하는 구조이다. 이래봬도 나름 안정감 있어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재택 근무 때 제법 업무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자꾸 말을 걸어 흐름을 끊어놓는 건 살짝 아쉬운 부분. 그래도 늦은 밤 스탠드를 켜놓고 둘이 앉아 있으면 급조한 뗏목을 타고 서로에게 의존해 바다를 항해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 ➊ 2016년 10월 9일 최인아 책방에서 발견한 1인 소파. 책 읽을 때 딱일 것 같아 눈도장 찍어 두었다가 2017년 4월 아내 생일 선물로 구입(까사미아) ➋ 2018년 7월 1일 목공 수업의 세 번째 결과물. 아카시아 집성목으로 만든 스툴 겸용 책꽂이. 모양과 씀씀이가 마음에 들어 나중에 하나 더 제작 ..
쉰둘, 잠깐 길에서 벗어나다.. 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 사랑에 빠져 반짝이고 싶었고, 깃털보다 자유롭게 날고 싶었다. 나는 욕심이 없었다. 젊은 날의 나는 소박했고 건강했으며 줄기차게 꿈을 꿨다.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꿈. 지금의 나는 덜그럭거리며 주어진 길을 간다. 끝이 훤히 내다보이는 못생기고 뻔한 길. 하루 종일 비굴하고 꾸부정하고 무겁다. 나는 원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만족했고, 의도적으로 생각의 양을 줄였다. 그래서 결국 망가졌다. 나는 쉰두 번째 생일 전날 방광에 암으로 보이는 덩어리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다. 의사는 요도를 통해 우겨넣은 카메라를 통해 그 흉칙한 녀석의 몰골을 보여줬다. 나는 앞마당에 비행접시를 주차하고 불쑥 나타난 외계..
아무도 몰래 슬쩍 꽃구경.. 꽃구경 나가는 게 민폐가 되어버린 요즘,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정원 벤치에 누워 호사를 누리는 시간... 사람과 거리 두는 건 코로나 전에도 일정 부분 실천하던 짓이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겠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적처럼 벌어지는 모든 현상에 관심을 끊고 박쥐처럼 동굴에서 살아가는 소심함에는 숨이 막힌다. 나름 기저질환자에 포함되는 처지이니, 최대한 조심조심 살아가는 게 좋겠지. 그래도 꽃과 거리 둘 필요까지는 없는 거라고...
뭐가 남았을까.. 분간이 되지 않는다. 남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이어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내일도 오늘같이 살아가려면, 오늘도 꼼짝없이 어제처럼 살아야 한다. 반짝이지 않는 것들을 꾸역꾸역 바라보고 건조하다 못해 바스러지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끊임없이 끄덕여야 한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참아야 한다. 해가 지고 있다. 나는 지쳤고 어딘가 편안하고 조용한 곳에 머무르고 싶을 뿐이다. 보물찾기도 술래잡기도 더는 관심 없다.
담배 한 개비.. 1. 1년 8760시간 중 딱 1시간 정도 담배가 땡긴다. 오늘 오후 3시가 바로 그 시점이었다. 참을까 하다가 영업팀 이부장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회사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흡연실에 구겨져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열려 있는 창으로 구름이 한가득이다. 내가 뱉은 담배 연기가 가당치도 않게 구름과 어우러졌다. 오랜만에 어지러웠다. 2.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뛰려고 하면 자빠지고 쉬려고 하면 밀어댄다. 갖고 싶은 것들은 철벽같은 쇼윈도 안에 놓여 있고 내 주위엔 쓸모없는 잡동사니만 넘쳐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꼭꼭 숨고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똥파리처럼 달려드는데 천성이 어눌해서 욕도 제대로 못한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따지고 들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3. 후..
급속 충전 설명서 온몸에 힘을 빼고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시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구석구석 흐르게 내버려 둡니다. 햇살이 있으면 좋고 비가 와도 상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는 기술입니다. 정수리에도 어깨 위에도 심장에도 뭐 하나 올려져 있으면 곤란합니다. 가만가만 조용히 숨을 쉬고 그 호흡에 자신을 얹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슬쩍, 마치 늘상 하는 행동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호흡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잘 안 되더라도 조바심 내지 마세요. 이 단계까지 가는 데 1년 넘게 걸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안 되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호흡을 타고 조심스럽게 조금씩 떠올라 상승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주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나는 미세한 존..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법 제일 공평한 공부는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고개만 쳐들면 시작할 수 있으니까. 하늘 아래 모두가 고만고만하다는 것만 인정하면... 살아가는 게 그렇게 힘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센서의 성능이 급격하게 좋아집니다.정수리 어디쯤에 있는 이 센서는 주위의 색, 온도, 습도, 몸 상태 등을 분석하여 시간의 속도를 파악한 후 심장 박동의 형태로 알려줍니다. 어제는 심장이 급격하게 뛰어 길 모퉁이에 한참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시간이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내가 흔들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바람이 지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푸석푸석 늙어버려서 햇살을 받아도 더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날이 저문다. 오늘, 미친듯이 파고들고 싶은 대상을 찾았다. 짐을 쌀까 3초 정도 고민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날이 저물면 끝이다. 나는 구르던 방향으로 계속 굴러야 하고,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게 통설이다. 그게 제일 슬프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슴 뛰고 폼 나는 일은 좀 더 싱싱한 아이들의 몫이다. 그게 제일 짜증난다. 나도 싱싱한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난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못생긴 세상에 슬퍼하고 짜증내면서... 그게 제일 후회된다. 가슴 뛰지 않는 일에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기타 등등에 한눈 팔지 말고 곧바로 핵심에 도달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우선순위에 올리고 지루한 일은 시간 많은 젊은 애들에게 미뤄야 한다. 취하지 말고 의미 없는..
고물 새것일수록 각광받는 요즘 세상, 나이들수록 근사해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가장 쉬운 길은 내 자리에서 내 빛깔을 유지하며 주위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천천히 희미해져 가는 것... 부디 욕심 부리다 처치곤란 고물단지 신세는 되지 말기를..
기다리지 말 것 기다리는 것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은 없다. 소파에 길게 누워 기다리더라도 진이 빠진다. 하물며 온 몸과 온 마음을 기울여 기다리다 보면 정수리로 체내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기다리면 얼굴이 푸석거리고 일주일을 기다리면 몸살이 나고 한달을 기다리면 늙어버린다. 그렇게 일년을 꼼짝 않고 기다리면..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 부서질 수도 있다. 곱게 오래오래 살려면 기다리지 않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 별 거 아니다.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다음 시간은 흐르듯 와서 차곡차곡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