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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여행

동경_140705-1

오늘 일정은 1. 이온몰이라는 거대 쇼핑몰에서 선물을 사고 2.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간단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 후 3. 근처 절에 들러 산책 좀 하다가 4. 나리타 공항으로 가서 귀국하는 거라고 들었다. 얼핏 듣기에는 꽤 널널하게 짜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결코 만만치 않다. 


먼저 2013년 일본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라는 이온몰은 그 규모가 정말 어마무시하다. 대충 둘러보는 데에만 반나절은 걸릴 것 같은 곳에서 최소 오십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구입해야 했다.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한 시간..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러닝맨 미션 수행하듯 뛰어다녔지만, 결국 문구 코너 하나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물론 사진을 찍을 여유 따위도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만약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면, 나중에 카드 고지서를 움켜쥐고 뒷목 잡은 채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쇼핑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한 식당.. 주차장의 규모로 짐작컨데 나리타 신쇼지를 찾는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인 듯. 식당은 2층이고 1층에서는 각종 특산품을 파는데, 대부분의 종업원이 기본적인 한국어를 구사한다. 



세상 어느 곳이든 뜨내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은 그저 그렇기 마련이다. 이곳 도시락 메뉴 역시 일본의 풍미가 느껴지는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가 인상적이었으나 맛은 그닥... 덕분에 5분만에 식사 종료. 



주어진 식사 시간이 50분 정도였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 식당 주변을 어슬렁걸리고 돌아다녔다. 일본색이 물씬 풍기는 골목을 걷다 보니 비로소 여행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 신주꾸나 하라주꾸를 헤매고 다니는 것보다 이런 외곽지역을 좀 더 깊이 둘러볼 걸..



그런데 조용하던 골목 끝에서 갑자기 요란한 전통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뭐지뭐지? 고개를 잔뜩 빼고 살피는데...



잠시 후 미야자끼 하야오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행렬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 가이드는 이 마을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걸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주어진 점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바로 행렬을 향해 달려나갔.   



나리타 마츠리(Narita Gion Festival).. 7월 4일에 시작해서 6일에 끝나는 지역 축제라고 한다. 여러 종류의 수레를 끌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잡귀를 수거하고 소원을 비는 행사인데, 마침 운좋게 맞닥뜨린 거다. 식당 주차장에서 무료한 시간 때우며 어슬렁거리고 있을 일행들에게는 미안했지만, 혼자 신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행렬을 따라다녔다.  



근데 다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열심이다. 이 수레가 뭐라고, 긴 행렬에서 누구 하나 삐져나오는 사람이 없다. 민망할 수도 있는 작은 역할에도 필생의 사명인 것처럼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니, 뜬금없이 소름이 돋는다. 이 사람들! 역사를 통해 증명됐듯이 까딱 방향을 잘못 잡으면 정말 걷잡을 수 없겠다. 물론 따라잡기 힘든 시민의식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축제를 벌이면서 거리에 미세한 휴지 조각 하나 없다는 사실만 봐도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격차가 느껴진다!!!



이 사람들의 기저에는 전체에 대한 강한 결속력이 깔려 있다. 바보이거나 개성이 없어서 부속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하나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기꺼이 시스템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 결속력으로 과거는 물론 현재의 일본이 유지되고 있다.



불과 20여 분 본 것 가지고 너무 거창하게 갖다 붙인 걸까. ㅎㅎ 어쨌든 3일 내내 찌들고 지친 표정의 도쿄 사람들만 보다가 활기 넘치는 나리따 주민들을 보니 기분이 확실히 업되는 거 같긴 하다.  



뭔가 포스가 느껴지는 아저씨들.. 무섭게 생겨서 접근하기 꺼려지지만, 관광객이 요청하면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신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마을 사람들 전체가 행사요원이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렇게 모두가 힘을 합쳐 작은 시골 동네를 세계적인 관광 상품으로 바꿔 놓았다. 그래, 밉든 곱든 배울 건 배워야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