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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생각

어느 날 문득 찾아 헤매던 비밀통로를 발견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그건 마치 "나는 맛있고 싱싱한 횟감이에요!"라고 목놓아 외치는 도다리 꼴이다. 나를 남에게 드러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소진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다. 나는 스스로 충만하고 홀로 완전해야 한다.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외부로부터 침범 당하지 않도록 견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오도카니 내 앞에 놓인 삶을 응시한다. 



의심하지 말고..
만두를 판다는 건 위장이고, 사실 이곳에서는 구름을 밀제조하고 있다. 알다시피 서울경기 지역의 구름은 당인리에 있는 국영 공장에서 만들어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다. 일부 까탈스런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만한 때깔 좋은 구름을 소량 맞춤 제작하여 거실 창밖에 널어 놓는 것을 선호한다. 행정당국의 감시를 피해 구름을 밀제조하고 있는 업체는 서울에만 이십여 군데 성업중이며, 최근 중국산 구름도 대량 유통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지만..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멀미가 날 지경이다. 노란 조명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는 물건들을 보면 맥박이 빨라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리며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쪽을 향하게 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건 백화점이나 구멍가게나 다를 바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도시의 회색 공기에 포함된 리타피카즘(Litapicasm)이라는 성분을 들이마시면서 심해졌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이 증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마냥 방치해 둘 일은 아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따지고 보면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삼 년에 한 번씩은 찾아왔다. 그 중 몇 번은 떠날 마음을 먹고 짐을 싼 적도 있다. 그때 과감히 출발하지 못한 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였다. 난 가볍지 않고 겁이 많으며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은 다이어트, 내공증진, 무기제조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은 방향설정이다. 
  


 
떠나기 전에 돌아갈 곳을 폭파시킨 후..

타인의 침략은 성을 높게 쌓으면 얼추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매번 나를 공략하는 건 내 안에 형성된 전쟁터를 낮은 포복으로 기어다니는 작고 못생긴 자아이다. 이 집요하고 잔인한 녀석은 익숙해진 난장판을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운좋게 탈출에 성공이라도 하면 즉시 수완 좋은 추노꾼이 되어 어설프게 숨은 나를 찾아내고 목덜미를 잡아 다시 제자리로 끌고간다. 그러니까 떠나기 전에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제자리이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찾아 헤매던 비밀통로를 발견했다. 퇴근 후 만날 사람이 있어 양화대교를 건너다 우연히 마주쳤다. 이런 순간을 오래 전부터 기다려 왔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차를 세운 후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내일 오전에는  일정이 늦어지는 저자에게 독촉 메일을 보내야 하고, 오후에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미팅이 잡혀 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이번 주 생활비를 이체해야 하고, 집 앞 세탁소에 맡긴 청바지도 찾아야 한다. 아, 그보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 양해 문자라도 보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