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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여행

나무들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1. 속초 가는 길에 화상 입은 나무들이 유령처럼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 끔찍했던 작년 산불의 흔적.. 처음 접하는 처참한 모습에 차에서 내려 한동안 말도 못하고 망연자실 서 있었다. 불탄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던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집앞 공터에 서있던 메타세콰이어 십여 그루가 베어진 걸 발견했을 때도 잉잉 울면서 집에 들어왔던 아내다. 비교적 둔한 감성의 소유자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여린 마음에는 더 감당하기 힘든 풍경이었으리라.

2. 산불이 나면 숲은 20년 이상 경과해야 불 나기 전의 70~80%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나무의 경우 산불 이전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동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토양 미생물이 활동을 재개해 정상적인 생태계를 되찾으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3.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들에 익숙해져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무는 생명체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걸 보면 어떤 동물보다 강한 생명력과 활기가 느껴진다. 나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 과정을 오랜 시간 공들여 지켜보면 확실히 알게 된다. 인간과 다른 시간 단위로 살아갈 뿐 나무 역시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엄연한 동료라는 사실을. 어쩌면 인간보다 훨씬 고상하고 지적인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더 지구에 기여하는지만 놓고 봐도 인간은 나무의 경쟁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  

4. 그런데, 어느 하찮은 인간이 부주의하게 흘린 작은 불씨 때문에 나무들이 이런 아픔을 당했다. 미안한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이다. 나무들이 복수를 위해 작당을 하고 달려들지는 않겠지만, 인간들은 언젠가 자기들이 한 경솔한 행동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산불 현장에서 숯이 된 나무 껍질과 솔방울을 주어와 작은 병에 넣어 간직하고 있다.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