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란 생각

그렇게 문이 또 닫혔지만..

[완주 화암사 극락전]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3개월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CT를 찍고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피를 뽑고 소변을 담아 제출한다. 그리고 방광 내시경을 한다. 젠장. 방광 내시경은 정말 싫다. 못견딜 정도로 아픈 건 아니지만, 못견딜 정도로 수치스럽다. 멀쩡하던 사람을 한순간에 병자로 전환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머리 위에 달린 모니터로 방광 구석구석을 살펴보다가 핏줄이 곤두선 부분이나 약간 부풀어 보이는 곳이 나타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검사하시는 분이 멋진 풍경이라도 만난 것처럼 냅다 셔터를 눌러댄다. 바짝 쫄아 뭔가 이상이 있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검사가 끝나면 겸허한 마음으로 진찰실 문 앞에 앉아 기다린다. 문이 열리면 나와 비슷한 안색을 한 환자가 들어가고 문이 닫힌다. 다시 문이 열리면 더 어두워진 안색을 한 환자가 나오고 다른 환자가 들어간다. 불안과 초조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꾸역꾸역 시간은 흐른다. 시간의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로 진득하다. 나는 마치 거대한 심장이 된 것처럼 온몸으로 두근거리며 얌전히 앉아있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린다. 문이 열리고 염라대왕 앞에 불려가듯 내가 들어간다. 잘생기고 젠틀한 주치의가 밝게 웃으며 나를 맞는다. 2년째 만나는 얼굴인데 여전히 반갑지 않다. "잘 지내셨어요." 나는 요즘 지치고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많아 잘 지내지 못했지만, 순순히 잘 지냈다고 대답한다. 웃음을 거둔 주치의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 본다. 살짝 훔쳐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수치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달깍달깍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CT와 내시경 검사 화면이 번갈아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정적 끝에.. "괜찮네요." 주치의의 말 한 마디가 온몸을 누르고 있던 거대한 바위를 없애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 전체가 가벼워진다.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피가 정상적으로 돌기 시작해 손끝이 다시 따뜻해진다. "3개월 후에 다시 보죠." 나는 비칠비칠 일어나 진찰실 밖으로 나온다. 문이 닫힌다. 그렇게 또 3개월을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