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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생각

연두빛 버티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춘삼월 만만한 바람에 위아래로 몇 번 크게 휘어질 때만 해도 마냥 유쾌했거든. 유연하게 휘어지는 기술을 터득한지 오래라 꺾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부러졌어.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인 거야. 

이라고 생각했어. 바닥에 떨어져 본 사람들은 알지. 내려앉는 건 한순간이지만, 원상태로 돌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이 상태로 뒹굴다 시간이 흐르면 말라붙어 부서지고 어느 순간 가루가 되어 사라질 거야. 나쁘진 않아.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그때 그녀가 나타났지. 숱 많은 곱슬머리에 뽀얀 피부, 작은 몸집의 그녀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깡총깡총 걸어오다가 문득 내 앞에 멈춰 섰어. "안녕, 여기서 뭐 해?" 쪼그리고 앉아 한참 들여다 보던 그녀는 어깨에 매고 있던 커다란 가방에 조심스럽게 나를 집어 넣더라고.

 

그날 오후 나는 물이 반쯤 담긴 유리병에 꽂혔어. 낯선 환경에 얼떨떨한 시간이 지나자 혼란이 시작되더라고. 구차하고 옹색하지만, 이렇게라도 끝을 피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햇살은 그대로인데, 오도카니 살아남은 내 모습이 뭔가 자연스럽지 않아 슬펐어.  

 

이 상태로는 오래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스물스물 뿌리가 나오더라고. 그리고 오늘은 불쑥 새 잎이 나온 거야. 나도 몰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미안한데, 이 현상을 내 의지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쩌겠어. 그냥 이렇게 버티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