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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여행

뉴욕 여행기 05-5 [착한 뉴요커]


뉴욕커에 대한 첫인상은.. 도도함. 냉정함..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여행자들과 구분된다. 신호등 앞에서 파란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건 뉴요커가 아니다. 옆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호기심에 빛나는 눈으로 두리번 거리는 것도 뉴요커가 아니다. 그들은 목적이 분명하고.. 그 외의 일에는 가급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예의바르지만.. 그래서 오히려 차갑게 느껴진다. 자기들끼리는 즐겁고 친근하지만 딱 그만큼이다. 웬만해서는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뉴욕에서 지낸 18일 동안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넨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길을 찾느라 지도를 들척이고 있을 때 한 아저씨가 다가와서 먼저 말을 걸었다. 어디 가려고 하느냐.. 자기가 알려 주겠다.. 유니언 스퀘어에 간다고 했더니 내가 보는 지도를 뺐어서 한참 들여다 본다. 한글 때문에 지도 읽는 걸 실패한 아저씨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영문판 뉴욕 전도를 들고 나타났다. 니가 있는 곳은 여기니까 이쪽으로 쭉 가다가 여기서 꺾어져서 조금만 더가면 된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내가 벙찐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답답했는지 따라오라고 하고 한참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길에 떨어진 종이조각도 들여다 보고, 마주치는 사람과 호들갑스럽게 인사도 하고.. 그렇게 5분 정도 가더니 사거리에 멈춰서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쭉 가란다. 흐흐.. 땡큐.. 인사하고 가려는데 멈춰 세우더니 아까 보여줬던 지도랑 고색창연한 아이러브 뉴욕 뱃지 하나를 건네 준다. 선물이라며... 뱃지를 꺼낼 때 가방 안을 보니 뱃지를 포함해서 온갖 기념품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일 삼아서 선행을 베풀 대상을 물색하는 사람.. 약간 또라이처럼 보이지만.. 착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에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박한 사람...

알고 보면 뉴욕도... 좀 복잡하긴 하지만... 사람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