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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뷰

늦은 가을, 닫혔던 문이 열려도...

가을이 지나고.. 시린 겨울도 어느덧 끝나간다.

이 영화를 예매하면서 한참을 망설였던 건 전적으로 이 영화 마케팅 책임자의 탓이다. 
영화의 미덕은 교묘하게 가리고, 생뚱맞은 카피와 이미지들을 전면에 내세워서 그저그런.. 사랑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선택했던 건 교감과 소통 초점을 맞춘 한 평론가의 글을 읽고, 살짝 호기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텅 빈 탕웨이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트위터 이웃의 글에도 영향을 받았다. 
이분들의 안목이 맞다면, 소통의 문제로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희망을 가져볼 만한 영화 아닌가.
그리고 그 기대는.. 영화를 본 후 목구멍까지 뿌듯하게 채워졌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난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화...
"하루 동안 펼쳐지는 불같은 사랑"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이 어떻게 닫히고 어떻게 열리는지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본,
지금의 내 상태에 딱 들어맞는 바람직한 영화..이런 호들갑이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탕웨이의 눈빛이다.
무심한 듯 텅 비었다가.. 정처없이 흔들렸다가.. 반짝 관심을 갖다가.. 촛점을 맞추며 집중했다가..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의 눈빛을 따라다녔다.
눈빛뿐만 아니라 미세한 표정의 변화, 작은 몸짓,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에서도 이 여자의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지할 수 있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본능적으로 그걸 느끼고 돈을 빌려달라고 접근한 현빈은 진정한 고수!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겠지만, 진정한 교감은 예민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이 영화의 또다른 미덕은 절제이다. 
돌려서 말하거나 구차하게 숨기지 않지만, 억지로 강요하거나 주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물론 이 거리가 깨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동안 유지했던 거리 덕분에 그 사소한 파격이 결정적으로 느껴진다. 
주인공들의 의상에서 알 수 있듯이 색감도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
음악 역시.. 찔끔찔끔 결정적인 순간에만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밋밋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내공.. 


교감이 이루어지는 건 하루에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교감은 평생에 걸친 사랑보다 더 오랜 잔향을 남긴다. 이들의 재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슴 아프거나 아쉽지 않았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구태여 현빈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어도.. 결말을 바라보는 느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 같다. 휴게소에서 기다리는 탕웨이의 안정된 눈빛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니까.. 오히려 문소리가 나고 탕웨이가 뒤를 돌아 봤을 때 현빈이 거기 서 있으면 어쩌나 하고 가슴 졸였을 정도이다.


사랑은 일반적으로 문을 닫게 만든다. 혹 열리더라도 단 한 사람을 향해서만 열린다. (그 열린 문을 통해서 완벽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세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희귀한 경우이다.) 교감은 반대로 닫힌 문을 열게 한다. 교감을 통해 사람들은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내가 이 영화와 제대로 교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영화는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혼자 교감이라고 우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