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란 생각

내가 느끼지 않으면, 아무도 느끼게 만들 수 없다


비 오는 날, 땅만 살피며 집에 오다가 문득 눈을 들었는데 갑자기 세상이 너무 윤기 있어 보였다. 하루 종일 푸석푸석하고 무미건조하고 심심하고 따분하고 그저그랬는데.. 갑자기 밀려 들어오는 감동에 목구멍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약 3분 정도 멍하니 서 있다가 잠에서 깬 사람처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노트북을 포함한 각종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에 내 머리조차 커버하지 못하는 작은 우산, 게다가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까지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감동적인 순간을 어떻게라도 기록해 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노출 부족에 손목에 걸린 쇼핑백이 덜렁거려 촛점 잡는 게 불가능했다. 우산은 어깨 위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빗방울이 카메라 렌즈 위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심지어.. 저 앞에 보이는 차에 앉아 있던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다가와 왜 자기 차를 찍냐며 눈을 부라렸다. 부인이 슈퍼 간 사이에 잠깐 세워 둔 건데 뭐 잘못됐냐고... 지나가는 길에 길이 너무 예뻐서 찍은 거라고 번호판은 보이지도 않는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해명을 하고.. 뻘쭘하게 서 있는 아저씨를 뒤로 한 채 부랴부랴 허둥지둥 빗물을 튀기며 집으로 향했다.  





고흐도 강가를 거닐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목구멍이 뜨거워졌을까? 그래서 내가 카메라를 꺼내 들었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걸까?

예술은.. 인간의 삶은.. 딱 열어 놓은 만큼 채워지는 거 같다. 

내가 찍은 <비 내리는 집앞 풍경>은 고흐가 그린 <론강의 별밤>처럼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없겠지만.. 과정은 꽤 유사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