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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쇼핑

내 감성은 소중하니까..

나처럼 돈을 아끼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돈을 아낀다기보다는 잰다. 이 돈이면 뭘 할 수 있다고 계산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8000원이면 을지로에서 엄청나게 감동적인 냉면을 먹을 수 있는데.. 회사 근처에서 비슷한 금액으로 그저그런 냉면을 먹으면 속이 쓰리다. 15000원이면 쾌적한 환경의 극장에서 캬라멜 팝콘에 콜라까지 마시면서 영화를 볼 수 있고, 30000원이면 새로운 버전의 포토샵을 마스터할 수 있는 책을 구입할 수 있다. 10만원이면 제법 괜찮은 배낭을, 20만원이면 자전거를, 40만원이면 텔레비전 수신 기능이 있는 모니터를, 150만원이면 맥북 에어를 구입할 수 있다. 근데 그 금액으로 그에 걸맞지 않은 수준의 서비스나 제품을 구입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렇게 나에겐 적절한 소비의 기준이 되는 몇몇 제품 또는 서비스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음향기기이다. 음향기기라고 해봐야 그저 소박한 이어폰이다. 진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스피커 하나 엠프 하나에 깜짝 놀랄만큼의 투자를 기꺼이 하겠지만.. 내가 이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최대의 금액은 20만원 이하이다. 그 이상이 된다면.. 다른 욕구에 밀리기 시작한다. 딱 그만큼.. 그 한도 내에서 나를 만족시켜 주는 제품을 찾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다.

가장 먼저 선택을 받은 제품은  오디오테크니카 ATH-CM7-TI... 전체적으로 고른.. 귀에 착 달라붙는다고 할까.. 깔끔한 디자인에 티타늄 재질의 견고함까지... 골고루 갖춘 무난한 제품이다. 당시 나와 있던 거의 모든 이어폰을 청음해 보고 비교한 끝에 선택한 제품이라 후회같은 건 애초에 자리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mp3 플레이어를 사면 번들로 주는 이어폰만 사용하다가 처음 구입한 고급 이어폰이기 때문에 감동도 그만큼 컸고.. 애지중지 소중히 다뤄서 무려 4년 가까이 사용했다. 아무 불만 없었는데 한번 단선되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었다. 결국 2010년에 퇴출...

그 다음 제품은 B&O의 A8.... 중고로 구입했다. 워낙 좋은 이어폰으로 소문난 녀석이지만 얼핏 듣기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음색이다. 중저음이 보강된 이어폰에 익숙해져 있다면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만큼 섬세하고 선명한 소리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구입하고 일주일은 이걸 다시 팔아야 하나 고민하며 보냈다. 밋밋해서.. 근데 이 이어폰으로 듣다가 다른 이어폰을 끼면.. 뭔가 부자연스럽다. 두꺼운 이불을 덮어 놓은 음악을 듣는 기분.. 그래서 결국 팔지 않고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다른 건 다 제치고.. 디자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이어폰이다. 하지만 2년만에 단선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bose ie2... 저음이 강화된 이어폰이다. 이번에는 정말 신중하게 골랐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는 일절 보지 않고, 오로지 직접 들은 느낌만으로 골랐으니까.. 심지어 디자인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고르고 나서야 내가 저음을 땡겨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정도... 아무리 그래도 이 흉칙한 이어폰을 하고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이어폰의 장점은 편안함과 공간감이다. 아무래도 점점 아저씨 취향이 되어가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