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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생각

쉰둘, 잠깐 길에서 벗어나다..

 

나는 시를 쓰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 사랑에 빠져 반짝이고 싶었고, 깃털보다 자유롭게 날고 싶었다. 나는 욕심이 없었다. 젊은 날의 나는 소박했고 건강했으며 줄기차게 꿈을 꿨다.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꿈. 지금의 나는 덜그럭거리며 주어진 길을 간다. 끝이 훤히 내다보이는 못생기고 뻔한 길. 하루 종일 비굴하고 꾸부정하고 무겁다. 나는 원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만족했고, 의도적으로 생각의 양을 줄였다. 그래서 결국 망가졌다. 나는 쉰두 번째 생일 전날 방광에 암으로 보이는 덩어리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다. 의사는 요도를 통해 우겨넣은 카메라를 통해 그 흉칙한 녀석의 몰골을 보여줬다. 나는 앞마당에 비행접시를 주차하고 불쑥 나타난 외계인의 대가리를 보듯 멍하니 암덩어리를 바라봤다.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2주 후 수술 일정이 잡혔다. 하필 12월 13일...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수술을 기다리면서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 말고는 딱히 이상이 없던 내 몸이 순식간에 암세포에 점령당한 너덜너덜한 폐기물로 전락했다. 나는 화가 나거나 무서워서 수시로 무너져 내렸다. 밤에는 내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며 전율했고, 낮에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난관을 떠올리며 한참 앞질러 절망했다. 빙산이 녹아내리듯 50년 동안 쌓아올린 알량한 높이의 삶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숨어서 울었다. 항상 눈이 부어 있는데, 정작 우는 장면을 들키지는 않았다. 항상 뿌리 끝의 에너지까지 끌어 올려 밝고 희망찬 기운을 불어넣어주려 애썼다. 딱 한 번 부엌 싱크대 앞에 앉아 몰래 흐느끼는 걸 발견했는데, 토닥이며 달래주려다 복받쳐 오열을 터뜨린 나 때문에 그나마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눌러 덮었다. 아내는 전에 없이 강해 보였지만, 껍질 아래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이 느껴져 내내 불안했다. 내가 빨리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아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단어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한번은 닥치는 일이다. 쉰둘에 맞닥뜨린 건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이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신호 정도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껍데기에 불과한 억지 삶을 멈추고, 나 자신에 집중하며 충실한 시간들로 남은 인생을 채우라는... 나는 몸에 안 좋다는 모든 음식을 끊고 대체로 무해하거나 어딘가에 좋은 기능을 한다는 음식들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심장이 내려 앉을 때, 머릿속에 떠올리면 안 되는 불길한 단어들이 떠오를 때 조건반사처럼 깊은 심호흡을 했다.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한 날은 심호흡도 통하지 않아 도살장에 끌려가는 눈치 빠른 소처럼 안절부절했다. 병원 이름이 인쇄된 환자복은 나를 완전히 무장해제시켰고, 팔뚝에 꽂힌 바늘은 완벽하게 나를 제압했다. 162병동 1668호 병실에는 밤새도록 진통제를 찾는 암 환자, 1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암 환자, 방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암 환자가 입원 중이었다. 암으로 입원하지 않은 유일한 환자는 전립선 수술을 받았는데, 그 분도 몇 년 전 간암으로 수술을 받은 경력이 있다고 했다. 방안에 꽉 들어찬 그들의 고통과 절망에 나는 압도당했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의연했다. 암울한 병원에서 유일하게 밝았고 그 무거운 공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질식하기 직전인 나를 붙들고 유연하게 헤엄쳐 그 무리한 시간을 건너갔다. 아내는 의존적이고 예민한 사람이라 작은 일에도 쉽게 깨지곤 했기 때문에 그런 단단한 모습이 놀라웠다. 나는 동아줄처럼 아내의 여린 손을 붙잡았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다음 날 오후 1시경에 시작되었다. 원래 계획은 11시였는데, 첫 번째 수술이 길어져서 차례로 밀렸다고 한다. 그 의사가 오늘 집도하는 네 번째 수술이었다. 침대에 실려 천정을 바라보며 이동하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수술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내와 아들과 인사를 나눴다. 어린애처럼 목이 메어 참느라 입안을 깨물어야 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수술실이 모여 있는 6층으로 이동한 후 몇 개의 문을 지나 오늘 수술 받을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커다란 방에 도착했다. 마취과 레지던트가 환자마다 똑같은 질문을 하며 돌아다녔다. 어제 자정부터 금식을 했는지, 흔들리거나 깨졌거나 임플란트한 치아는 없는지, 팬티는 벗었는지, 장신구나 렌즈 등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똑같은 질문이 몇 번씩 반복되는 걸 들으니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그냥 한 번에 하면 안 되나? 어제 자정 이후 뭐 드신 분 손 들어 보세요. 혹시 팬티 아직 안 벗으신 분 손 들어 보세요...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돌아다니던 내가 이런 몰골로 여기 누워 있으니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 살았다고 이런 꼴을 당하나 싶었다. 그냥 벌떡 일어나서 수술 안 받겠다고 나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대로 누워 있으면 다시는 내 발로 일어나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천정에 못생긴 고딕체로 쓰여 있는 성경 구절을 주문처럼 계속 되뇌었다. 옆 자리 소파에 구겨져 자고 있던 담당 레지던트가 부시시 일어나더니 자, 이제 수술 받으러 가시죠.. 라며 침대를 밀었다. 오후 1시에 저렇게 파김치가 될 정도로 앞 수술은 힘들었을까? 수술하다 졸면 어떡하지? 나는 레지던트에게 격려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 전에 수술방에 도착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기계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의학 드라마에서 보던 수술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렇게 정신 사나운 곳에서 수술을 한다고? 또다시 불안이 밀려드는 순간 얼굴에 호흡기가 다가오고 까무룩 의식이 끊겼다. 

 

수술이 끝난 후 병실에 돌아와 이틀 밤낮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지냈다. 보통 하루면 걷는 게 가능하다는데 나는 너무 아파서 몸을 뒤척거릴 수도 없었다. 간호사에게 진통제를 요청해서 맞고 심지어 마약 성분이 들어있다는 진통제까지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냥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방광에 연결된 관을 통해 소변과 함께 핏덩이들이 빠져나가는 걸 보며 빨리 세척이 완료되어 이 끔찍한 장치를 떼내는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잘 먹고 잘 싸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는 말이 눈물 나도록 실감 났다. 아내는 소변봉지가 어느 정도 차면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아 오물실에 갖다 버리는 역할을 맡았다. 아내가 소변과 피, 수술 찌꺼기들이 뒤섞인 흉칙한 액체를 따를 때마다 미안함과 안쓰러움 때문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통증 때문에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나에게 끼니 때마다 밥을 떠먹여 주었고 따뜻하게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줬으며 부르튼 입술에 약을 발라주었다. 

 

그렇게 두 밤을 지낸 후 퇴원수속을 밟았다. 이틀 동안 움직이지 못해서 허리와 엉덩이가 진물렀고, 고통을 참기 위해 발끝에 계속 힘을 주고 있어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종아리 근육이 뭉쳐 있었다. 그래도 병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4일 동안 감지 못해 떡진 머리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병원비를 정산한 다음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내 발로 걸을 수 있다는 행복을 만끽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열흘 간 요양했다. 내가 해야할 일은 물을 많이 마시고 자주 소변을 보는 것 뿐이었다.

 

떼어낸 흉칙한 종양은 암세포로 확인됐고, 그것도 재발 가능성이 아주 높은 악성이었다. 결국 1월 31일에 2차 수술을 받았다. 떠올리기도 싫은 과정이 고스란히 반복됐다. 이어서 12주에 걸친 힘겨운 약물치료도 끝냈다. 더 끔찍한 건 이 모든 게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닌 함부로 예상할 수조차 없는 무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닥쳐 허둥지둥 휩쓸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부터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빠릿하게 대처해야 한다. 흐트러짐 없이 남은 인생을 계획하고 서둘러 지나간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 물론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두어야 한다. 나에게만 닥친 일이 아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겁고 암울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생각해야 하는 일인데, 마침 기회가 왔으니 깊숙히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어찌됐건.. 살아 있을 때 최대한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