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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생각

나에게 닥친 불행을 팔아 카메라를 샀다..

 

다행스럽게도 암 보험을 두 개나 들어두었다. 암 진단만 받으면 무조건 1000만원을 받게 되는 이 보험을 들 때 설마 보험금을 수령하는 날이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온갖 불길한 내용으로 가득한 서류들을 바리바리 챙겨 보험회사에 갖다 줬더니 암세포가 근육층을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금의 20%만 지급할 수 있단다. 진단서에는 분명 암이라고 적혀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져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비슷한 사례로 분쟁이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보험회사의 횡포에 맞서 암 진단비를 전액 다 받아주겠다는 손해사정인 광고도 눈에 띄었다. 한참 고민하다 그냥 따지지 않고 20%만 받기로 했다. 내 방광에 자리잡은 암세포들이 변변치 않아 근육층을 침범하지 못했으니, 20%라도 감사하며 받고 떨어지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두 건 모두 20%씩 총 400만원이 계좌에 입금되었다. 계좌에 돈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야 마땅한데, 이상하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은행 계좌에 암세포가 침범한 느낌.. 결국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카메라와 렌즈를 사는 데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써 버렸다. 나는 이 카메라로 내 인생의 나머지 부분에서 만날 아름다운 장면들을 찍을 예정이다. 그러니까 이 카메라와 렌즈들이 내가 가입한 마지막 보험이다.